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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리퍼는 아무거나 써도 될까요 — 드리퍼는 취향, 필터는 품질

    드리퍼는 아무거나 써도 될까요 — 드리퍼는 취향, 필터는 품질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 두 개 있습니다. 드리퍼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나요. 그리고 왜 하리오 드리퍼를 쓰세요.

    왜 하리오냐고 물으시면, 가장 큰 이유는 이뻐서 사용하는 거고요. 추출에 큰 문제가 없어서 사용합니다.

    드리퍼에 따라 맛이 달라지나요

    달라지기는 합니다. 모양이 다르고 구멍의 사이즈나 개수가 다르면 물이 빠지는 양이나 속도가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 정도 차이는 레시피로 맞출 수 있습니다. 분쇄도를 조금 바꾸고, 물 붓는 속도를 조금 바꾸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드리퍼는 이쁜 거 쓰시면 된다고 말씀드려요. 웬만한 드리퍼는 써도 크게 문제없고, 이쁘면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내추럴이냐 워시드냐에 따라 드리퍼를 달리 써야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저는 진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에요. 원두에 맞춰서 레시피를 잡으면 되지, 드리퍼를 가려 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가 유리 드리퍼를 쓰는 이유

    엘카페는 유리 드리퍼를 씁니다. 지금은 하리오 V60이고요. 유리가 투명해서 이쁘기도 하고 위생적으로도 관리하기가 좋잖아요. 그게 다예요.

    플라스틱 드리퍼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잘 만든 플라스틱 드리퍼는 가볍고 재질도 좋고, 써도 전혀 상관없어요. 오히려 유리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습니다. 깨지고, 비싸고, 무겁습니다. 그래서 캠핑처럼 밖에 들고 나갈 때는 플라스틱 드리퍼를 더 추천합니다. 사용 용도에 따라서 구분하시면 돼요.

    흰색 종이필터를 넣은 유리 드리퍼에 금속 용기에서 커피 가루를 옮기는 손.
    종이 필터를 장착한 유리 드리퍼에 커피 가루를 담는 모습.

    버려야 하는 드리퍼는 있습니다

    일부 플라스틱 드리퍼는 오래 사용하다 보면 금이 가거나 갈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드리퍼는 더 쓰지 않습니다.

    그게 제품 설계 때문인지, 사용 조건 때문인지는 따져봐야겠죠. 하지만 금이 간 드리퍼는 세척이나 내구성 면에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금이 간 드리퍼에 커피 물이 배어든 걸 연륜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쓰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제품은 교체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드리퍼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용도와 사용 온도에 맞는 제품이라면 충분히 좋은 선택입니다.

    드리퍼를 두 번 바꿨는데, 두 번 다 필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드리퍼는 정말 쓰기 편했어요. 물줄기 잡기도 편하고 저도 좋아하는 재질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쯤 쓰다 보니 필터에서 갑자기 종이 맛이 안 빠지는 거예요. 린싱을 서너 번 해도 갱지 맛이 났습니다. 그 드리퍼는 모양이 특이해서 맞는 필터가 그 회사 것밖에 없었고, 바꿔 쓸 필터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드리퍼를 뺐습니다.

    하리오로 갈아탔는데, 그때는 하리오 종이 필터에서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드리퍼를 또 바꿔야 하나, 고민하다가 찾은 게 킨토의 면 필터였습니다. 원뿔형은 맞는 필터가 여러 회사에서 나오니까 이번에는 드리퍼는 두고 필터만 바꿀 수 있었죠. 지금은 하리오 V60에 카펙 아바카 필터를 씁니다. 요즘은 하리오에서도 아바카를 넣은 필터가 나오더라고요.

    겪어 보니 하리오만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드리퍼 회사에서 나오는 필터는 만든 시기에 따라 맛이 다른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필터를 직접 만들지 않고 외주로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저는 짐작만 하고 있어요.

    돌아보면 드리퍼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꾼 적은 없었습니다. 두 번 다 필터가 문제여서 바꿨어요.

    필터는 내가 만들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저는 드리퍼보다 필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드리퍼는 생각보다 아무거나 잘 쓰면 되고, 거기에 맞춰서 레시피를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필터는 내가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맛이 나쁜 필터는 레시피로 못 고칩니다.

    필터 맛이 왜 들쭉날쭉하냐면, 종이가 결국 나무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봐요. 예전에 종이 공장 쪽에 물어본 적이 있어요. 펄프를 동남아시아 같은 데서 들여오는데, 그 펄프 상태에 따라 종이 질이나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아, 종이도 임산업이구나. 공장에서 만들긴 하지만 재료는 자연에서 오는 건데, 종이 맛이 어떻게 항상 똑같겠어요.

    마트에서 파는 100장에 2,000원짜리 필터는 욕먹어도 되는 필터라고 저는 말합니다. 좋은 필터를 써도 한 잔에 몇십 원 더 드는 정도예요. 근데 그 몇십 원이 커피 맛에는 생각보다 크게 작용해요.

    필터가 맛을 가리는 경우도 있어요. 케맥스 필터는 깔끔하게 잘 나오긴 하는데, 저한테는 너무 많이 걸러내는 느낌입니다. 뽀샵을 많이 한 사진 같아요. 잡티가 날아가서 뽀샤시하긴 한데, 그 커피가 원래 가진 것까지 같이 가려 버린 느낌이요. 뽀샵을 안 해도 이쁜 커피를 굳이 뽀샵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저는 잘 안 씁니다. 물론 그 맛을 좋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금속 필터는 어떤가요

    스테인리스 필터도 괜찮습니다. 다만 미분에 민감하지 않으신 분께 추천해요.

    고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프렌치프레스로 내렸을 때 바닥에 남는 미분이 싫으셨던 분은 스테인리스 필터도 싫어하실 거예요. 깔끔하고 쨍한 맛을 좋아하시면 종이 필터가 더 맛있을 거고, 좀 더 오일리한 맛을 좋아하시면 스테인리스 필터도 쓸 만합니다.

    금으로 코팅한 필터도 있는데, 금으로 만든 게 아니라 스테인리스에 금을 입힌 겁니다. 금으로 내린 커피라는 느낌은 나죠. 맛은 스테인리스 필터를 고르는 기준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드리퍼를 고르실 때 하나만 보세요

    드리퍼는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세요. 이쁜 거, 손에 맞는 거, 들고 다니기 좋은 거면 됩니다. 어차피 커피를 취미로 하다 보면 드리퍼는 다양하게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대신 그 드리퍼에 맞는 좋은 필터가 있는지는 꼭 한번 보세요. 좋은 필터가 안 나오는 드리퍼라면, 좋은 필터가 나오는 드리퍼로 바꾸시는 걸 추천합니다. 예전에는 도구가 좋아야 커피를 잘 내린다고들 했는데, 요즘은 재료 쪽으로 관심이 옮겨 왔어요. 원두가 중요하고, 물도 생각보다 중요하고, 아무도 신경 안 쓰던 필터의 재질도 생각보다 맛에 영향을 많이 줍니다.


    ▶ 원본 영상: 「커피드립퍼와 필터페이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엘카페양사장 · 2021-02-16) https://www.youtube.com/watch?v=VU76hEfKP84

    📌 다음 편 — 필터에도 돈을 쓰는 시대가 됐습니다. 비싼 필터는 정말 값을 할까요?

  • 커피에서 종이 맛이 날 때 — 필터를 고르는 기준

    커피에서 종이 맛이 날 때 — 필터를 고르는 기준

    드립커피에서 종이 맛이나 나무 맛이 난다면, 원두를 바꾸기 전에 필터부터 의심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그걸 몰라서 몇 달을 고생했거든요.

    몇 년 전에 매장 커피 전부에서 갑자기 종이 맛(재생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팅이 뭐가 문제지, 하면서 두세 달을 잠도 잘 못 잤어요. 그러다 커피를 내리는데 종이 냄새가 확 올라오더라고요. 종이 필터가 문제였던 거죠. 그때 사용하던 드리퍼는 호환되는 다른 필터가 없어서, 결국 드리퍼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필터를 그냥 소모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레시피를 잡을 때 필터도 같이 봐요.

    필터 맛은 어디서 오나요

    대부분의 종이 필터는 나무 펄프로 만듭니다. 그런데 종이 회사가 늘 같은 펄프를 살 수는 없어요. 어떤 나무 원료가 들어왔는지 추적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들어오는 펄프가 바뀌면 종이 질도 맛도 같이 바뀝니다. 종이 만드는 쪽에서는 종이의 ‘맛’이 관리 항목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필터에 쓰는 재질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카페는 한동안 킨토의 면 필터(cotton filter)를 쓰다가, 지금은 카펙 아바카 필터를 씁니다. 마닐라삼이라고 부르는 아바카를 함께 넣어 만든 제품인데, 이 제품들은 종이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물론 펄프 필터라고 다 나쁜 건 아닙니다. 좋은 펄프로 만든 필터는 괜찮아요. 어떤 펄프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필터가 문제죠.

    같은 회사 필터도 맛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필터의 두께를 재 보면 생각보다 차이가 큽니다. 회사마다 다르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제품마다 다릅니다. 표면 가공도 다르고요. 안쪽은 매끈하고 바깥만 거칠게 만든 것, 양쪽 다 거칠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주름 종이필터 안의 젖은 커피층을 위에서 본 모습.
    주름 종이 필터 안의 젖은 커피층을 위에서 본 모습.

    두께와 표면이 다르면 물 빠지는 속도가 달라지고, 그러면 맛도 달라집니다.

    추가로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더 있어요. 같은 브랜드라도 만드는 공장이 여러 곳인 경우가 있습니다. 박스 포장과 봉투 포장이 아예 다른 곳에서 나오기도 하고, 어떤 브랜드는 살 때마다 두께가 달라서 레시피를 다시 잡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필터를 정했으면 같은 포장, 같은 제품으로 계속 쓰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커피 추출 편차가 덜하거든요.

    린싱은 꼭 해야 하나요

    필터를 뜨거운 물로 한 번 흘려 내려서 헹구는 걸 린싱이라고 합니다. 린싱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는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릅니다.

    종이 맛을 빼려고 하는 거라면, 저는 애초에 종이 맛이 안 나는 필터를 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게 빠르니까요. 종이 맛이 센 필터는 물을 300ml 부어 헹궈도 그 맛이 안 빠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필터가 머금는 물 때문에 린싱하시는 분도 있어요. 필터가 물을 조금 먹으니까 그걸 레시피에서 빼려는 건데, 그러려면 린싱하고 털어내는 물의 양까지 매번 같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필터가 커피의 첫 성분을 먹어 버리는 걸 막으려고 하신다는 분도 있는데, 이론상 일리는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차이를 느낄 만큼 미각이 뛰어나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고르면 되나요

    비싼 필터를 사라는 게 아닙니다. 괜찮은 필터를 사라는 거예요.

    너무 싼 건 맛없는 게 거의 확실합니다. 약품 맛이나 종이 맛이 세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비싼 게 항상 좋은 것도 아닙니다. 어느 선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취향이에요. 케맥스 필터도 비싼 편인데, 요즘은 씨바리스트나 하리오 메테오, 하이플럭스처럼 그보다 더 비싼 필터도 많아졌어요. 케맥스는 저한테는 좀 과하게 걸러낸다는 느낌이라 잘 안 씁니다. 그 맛을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소재 다음으로 보실 건 물 빠지는 속도입니다. 필터를 라이트·다크처럼 로스팅 정도로 나눠 파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 빨리 빠지는 것, 중간, 천천히 빠지는 것으로 보고 고르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가늘게 갈아서 빠르게 내리는 방식이 많아서, 라이트 로스팅이라고 꼭 천천히 빠지는 필터가 맞는 것도 아니거든요. 내가 빨리 내리고 싶은지 천천히 내리고 싶은지를 먼저 정하고 필터를 고르시면 됩니다. 저희가 지금 유속이 빠른 필터를 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드리퍼를 고를 때도 필터를 먼저 봅니다

    처음에 드리퍼째 바꿨다고 말씀드렸죠. 그때 쓰던 드리퍼는 생각보다 쓸 만했고 스테인리스라 사진 찍어도 예뻤어요. 드리퍼 자체는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양에 맞는 필터가 그 회사 것밖에 없었어요. 필터 맛이 나빠지니까 바꿔 쓸 데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원뿔형의 필터는 다양한 회사에서 나옵니다. 필터가 마음에 안 들면 필터만 바꾸면 돼요. 저희가 지금 하리오 V60 드리퍼에 다른 회사 필터를 끼워 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흰색 종이필터를 넣은 유리 드리퍼에 금속 용기에서 커피 가루를 옮기는 손.
    종이 필터를 장착한 유리 드리퍼에 커피 가루를 담는 모습.

    그래서 드리퍼를 새로 사실 때는 그 드리퍼에 맞는 필터를 몇 군데서 구할 수 있는지도 한번 보세요. 드리퍼는 취향으로 골라도 되지만, 필터는 품질이라 바꿀 길이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5분이면 확인됩니다

    커피 없이 필터만 뜨거운 물에 우려서 한 모금 드셔 보세요. 저희도 매장에 있던 필터를 전부 우려서 맛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건 그냥 물맛이고, 어떤 건 종이 맛만 나고, 어떤 건 떫어서 바로 뱉었습니다. 입에서 종이 맛이 안 빠져서 다음 컵을 못 마실 정도인 것도 있었어요.

    여러 컵과 필터 앞에서 갈색 종이필터를 들어 설명하는 진행자.
    엘카페의 종이필터 비교 영상. 여러 컵을 앞에 두고 갈색 종이필터를 들어 설명하는 장면.
    캡처 출처: 엘카페양사장 「[커피 추출 가이드] Ep.4 종이 필터」 · 00:04:15.033333

    아, 내가 커피에서 안 좋게 느꼈던 맛이 여기 있었구나,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커피가 잘못된 게 아니라 필터가 잘못된 거예요.


    ▶ 원본 영상: 「페이퍼필터 논란 종결 — 제가 한번 맛보겠습니다」(엘카페양사장 · 2022-07-30) https://www.youtube.com/watch?v=Y9SSjirjzFE

    📌 다음 편 — 드리퍼는 취향이고 필터는 품질입니다. 그럼 드리퍼는 아무거나 써도 될까요?